로스쿨에 가기로 했다.

로스쿨에 가기로 했다.

한동안 자주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발자라는 직업은 꽤 “안전한”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수요는 넘쳤고, 실력자들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나는 블록체인이라는 특이한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성이 있었고, 여러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 팀원들을 조율하고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데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전문성을 갈고닦으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다, 내지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모종의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AI가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단한 함수 정도였는데, 어느새 꽤 복잡한 로직도 뚝딱 만들어냈다. 주니어 개발자가 하루 종일 씨름하던 작업을 몇 분 만에 해치웠다. 몇 달이 지나자 하나의 잘 짜인 계획서만 있다면 하나의 프로젝트를 스스로 완성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걸 보면서 느낀 감정은 신기함이 아니었다. 묘한 불안이었다.

기술은 원래 빠르게 변했다.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단순히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배우거나, 새 언어에 적응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코드를 작성하는 행위, 무언가를 개발하는 행위 자체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쌓아온 것들이 빠른 속도로 범용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범용화된 능력은, 결국 대체된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계속 개발이나 프로젝트 관리를 할 수도 있었다. AI를 더 잘 다루는 개발자가 되거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거나, 기획, 아키텍처나 시스템 설계 쪽으로 방향을 틀거나. 그 길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찜찜했다. 그 길을 걷는다 해도,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개발이 좋았던 이유는 코드 자체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게 실제로 누군가의 삶에 닿는 것. 그 임팩트가 좋았다. 내가 만든 프로덕트가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고,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조금 다르게 만드는 것. 그게 개발을 계속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그 원동력을 따라가다 보니, 자꾸 한 가지 생각에 다다랐다.

가장 큰 임팩트는 어디서 나오는가.

개별 프로덕트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결국 그 제품이 작동하는 환경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영향력에 천장이 생긴다. 그 환경이라는 게 뭔가 생각해봤더니,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였고, 그 기저에는 제도, 규칙, 법이 있었다.

법은 세상을 규율한다. 추상적인 말 같지만, 정말 문자 그대로다. 어떤 계약이 유효하고, 어떤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되고, 어떤 권리가 보호받는지를 법이 정한다. 플랫폼 하나가 수백만 명의 생활방식을 바꿔놓아도, 그 플랫폼이 어떤 규칙 아래서 작동하는지는 법이 결정한다.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결국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제어할지는 법의 언어로 쓰인다.

그렇다면 그 언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게 단순히 법조인이 된다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법의 언어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두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들이, 내가 평생 하고 싶은 것들과 닮아 있었다.

법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양 수업에서 우연히 법을 배워 나가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딱딱하고 암기 위주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면 전혀 달랐다. 법은 사회와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논리로 풀어내는 학문이었다. 심도 있는 고민과, 아주 정밀하고 집요한 논리.

어떤 개념이 왜 그렇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이 충돌할 때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 같은 사실관계에서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과정. 그게 놀라웠다. 단순히 규칙을 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훈련하는 것 같았다.

개발하면서 배운 것들이 의외로 많이 겹쳤다. 복잡한 요구사항을 논리적으로 분해하는 능력, 엣지 케이스를 찾아내는 감각, 시스템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미리 생각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코드라는 하나의 결과물로 최적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까지. 법적 사고와 개발자의 사고는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개발을 하면서 이미 법적 사고에 가까운 훈련을 해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깨달음이 결심을 굳히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

“체급”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어떤 사람들은 방에 들어왔을 때 대화의 무게 자체를 바꾼다. 그 사람이 무언가를 말했을 때,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존재감. 그게 나이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경험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의 깊이에서 오기도 한다.

나는 솔직히 그 무게를 원했다. 오래 개발을 해오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느낀 게 있었는데, 기술적인 전문성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개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테이블에 앉을 수는 있어도, 그 테이블에서 판을 바꾸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무언가가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법조인, 변호사는 그 무게를 가진 직업이다. 단지 사회적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 전문성이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이 다르다. 계약서 한 줄, 판결 하나, 의견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력의 크기와 방식이 내가 원하는 것과 맞닿아 있었다.

나중에 내가 다시 세상에서 큰 일을 하려고 할 때, 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출발선이 다를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기술도 알고, 법도 아는 사람. 그 조합이 앞으로의 세상에서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낼지, 생각만 해도 설렜다.

결심이 쉽지는 않았다.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는 일이니까.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다시 초보가 되는 일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작이 주는 불안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게 정말 맞는 방향인가.

그 질문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도 가끔 찾아온다.

하지만 결심하고 나서 느낀 감정이 있었다. 오랜만의 긴장감.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 묘한 감각. 그게 반가웠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다.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각. 어쩌면 나는 그 감각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이 두 개의 언어를 모두 가진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개입해보려 한다.

좋은 의미로, 오랜만에 긴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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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륜 소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블록체인 & AI 분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대구광역시, 대한민국 https://haryun.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