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다 해주는 시대,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다.
제1회 로스쿨 AI 챌린지 참여 후기
로스쿨에 들어온 지 한 학기를 갓 마쳤을 무렵, 친구와 함께 제1회 로스쿨 AI 챌린지에 참가했다. 대회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단순히 “AI를 잘 써서 사례형, 기록형 답안 같은 것을 써내는 대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문제지를 받아 들고 나니, 이 대회가 묻고 있는 것은 훨씬 더 깊었다. 법률가가 AI를 도구로 삼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을 더 정확하게 검증해야 하는가. 학생들은 어떠한 역량을 길러야 할 것인가. 그리고 끝내 사람만이 책임질 수 있는 판단은 무엇인가.
이번 대회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와 법률신문사, 로앤컴퍼니, 엘박스가 공동 주최한 대회로, 전국 로스쿨생들이 AI 활용 능력과 법률 문제 해결 역량을 함께 겨루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예선, 본선, 결선을 거치며 단순한 법률지식 암기가 아니라, 실제 의뢰에 대응하듯 AI를 활용해 법률 리스크를 분석하고 의견서를 작성해야 했다.
첫 번째 단계, 온라인 예선
첫 관문은 온라인 예선이었다. 친구와 대구에서 모여서 함께 노트북을 펴고 접속했다. 전국에서 900명이 넘는 로스쿨생들이 참가 신청을 했고, 실제 예선에서는 265개 팀이 제한 시간 안에 답안을 제출했다. 그중 150개 팀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시작 전에는 문제 형식이 어떨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사례형이나 기록형 문제처럼, 사실관계를 주고 “소장을 작성하라”거나 “검토의견을 쓰라”는 식의 과제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훨씬 실무에 가까웠다. 가상의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가 급하게 법률 자문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오고, 우리는 그 회사의 자문 변호사처럼 2시간 안에 금융규제, 개인정보, GDPR, 데이터 유출 대응까지 검토해야 했다. 법령과 판례를 외워서 쓰는 시험이 아니라, AI를 켜놓고 필요한 자료를 찾고, 그 답을 검증하고, 의뢰인에게 실제로 줄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야 하는 과제였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오히려 흥미로웠다. AI가 초안을 빠르게 내놓으면, 우리는 그것이 정말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빠진 쟁점이 있는지, 과장된 표현은 없는지, 의뢰인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야 했다. 두 시간은 정말 짧았지만, 리걸 AI를 활용해 꽤 만족스러운 답안을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건 단순한 AI 사용 대회가 아니라, AI를 쓰는 법조인의 사고방식과 실무적인 감각을 보는 대회라는 것을 이해했다.
두 번째 단계, 본선
며칠 뒤 본선 결과 발표에 우리 팀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분 좋게 서울로 향했다. 본선은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대회장에 들어서자 노트북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수많은 로스쿨생들이 팀별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온라인 예선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같은 공간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문제를 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감이 컸다.
본선에서는 김·장,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등 주요 로펌이 직접 출제한 여섯 개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문제가 무작위로 배정되었다. 참가자들은 LBOX, SuperLawyer, Ailex 등 리걸 AI 도구를 활용해 제한 시간 안에 답안을 완성해야 했다. 예선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AI가 써준 답을 제출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사람이 검증하고, 구조화하고, 의뢰인을 위한 실무 문서로 바꾸어내야 하는 시험이었다.
우리가 받은 문제는 5번 문제였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어느 로펌이 어떤 문제를 출제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이 출제한 것을 알고 나서 다시 보니, 문제 속 가상 회사 이름이 ‘퍼시픽모빌리티’였다. “퍼시픽”모빌리티. 그제야 힌트가 보였다. 대단한 센스였다.
5번 문제의 출제 분야는 M&A, AI, 개인정보, 국정감사. 제한 시간은 단 3시간이었다. 퍼시픽모빌리티라는 가상의 상장회사가 75% 자회사인 센트로폴리스항공의 항공사업부문을 양수하는 동시에, AI 채용평가 솔루션의 차별 의혹과 국정감사 자료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복합 사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최종 답안뿐 아니라 AI 활용 내역서까지 제출해야 했고, AI 결과물을 검토 없이 제출하는 경우 AI 활용 전략 점수가 0점 처리된다는 유의사항도 명시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압도되었다. 갓 1학년 한 학기를 마친 학생에게 기업 인수합병, 항공사업법,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개인정보보호법, AI 규제, 남녀고용평등법, 국정감사 대응까지 한꺼번에 검토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M&A 딜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채용 AI는 3만 8천여 명의 지원자 중 2만 5천여 명을 자동 탈락시켜 버린 것이 문제되었다. 원만하게 인수합병을 마치려면 정부의 허가가 필요할 것인데, 차별 이슈가 터져버렸으니 통합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즉, 한번에 인수합병과 관련한 상법 쟁점들, 항공기 리스와 관련된 국제 계약 분석, 개인정보보호법 규제준수, 국정감사 및 시민단체 기자회견까지 대응하라는 것인데, 당연히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선에서 했었던 것처럼 역할을 나누어 대응을 시작했다. 친구는 빠르게 법률 리서치를 시작했고, 관련 법령, 판례, 규제 쟁점을 찾아 문서로 정리했다. 나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답안 전체의 구조를 잡고, 쟁점별 의사결정을 마무리하고, 최종 서면으로 다듬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SuperLawyer와 LBOX 등 리걸 AI 도구는 엄청나게 강력했다. 방대한 자료 속에서 모순되는 사실관계를 찾아내고, 빠르게 목차를 제안하며, 놓칠 수 있는 법적 쟁점을 환기해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AI의 답은 결코 그대로 제출할 수 있는 완성품이 아니었다. AI 활용 내역서에도 적었듯, 우리는 RAG 기능이 있는 도구들에 자료를 올리고, 사람이 파악한 쟁점을 중심으로 다시 질문하고, AI가 제시한 결과를 다시 검토하고 요약해 내부 리서치 문서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했다. AI가 제시한 판례나 법령도 다시 확인해야 했고, 문제 자료 속 서로 충돌하는 사실관계도 사람이 판단해야 했다. 빠른 답은 있었지만, 책임질 수 있는 답은 별개의 문제였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의뢰인에게 유리한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예컨대 국정감사 자료요구에 대해 단순히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이유로 전면 거부하라고 쓰는 것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실무적으로 위험한 대응이라고 보았다. 대신 가명처리, 마스킹, 요약본, 샘플 제출, 현장열람 등 형태를 조정하되 필요한 자료는 제출하고, 동시에 국외이전, 보유기간, 자동화 결정 안내와 실제 운영 사이의 불일치를 시정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채용 AI에 대해서도 Auto Non-Pass 기능을 중단하거나 인적 재검토를 의무화하고, FaceVector를 민감정보로 전제해 별도 고지 및 동의 체계를 마련하며, 외부 편향성 감사를 실시하라는 액션 플랜을 세웠다.
본선 답안을 제출하고 난 뒤에는 손끝이 떨렸다. 3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읽고, 판단하고, 버리고, 다시 썼다. 그래도 제출을 완료하고 대회장을 나서니 이상하게 후련했다. 친구와 맛있는 것도 먹고 잘 쉬다가 헤어졌지만, 결과 발표까지의 하루는 너무 길게 느껴졌다.
다음 날, 먼저 결선 진출팀 12개 팀이 발표되었다. 문제별 상위 2개 팀이 결선에 진출하고, 문제별 최고 성적 팀은 본선 우수상을 받는 구조였다. 다만 본선 우수상 수상 여부는 최종 시상식 때까지 알 수 없었다. 결선 진출 명단에서 우리 팀을 확인했을 때는 정말 신났다. 친구와 다시 aT센터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동안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결선, 그리고 결과 발표
결선은 본선과 또 달랐다. 이번에는 결선 진출팀 모두가 같은 문제를 풀었다. 회사법, 주주분쟁, 협상 전략, 합의서 초안이 결합된 문제였다. 한 스타트업에서 공동창업자 간 지분 분쟁이 발생했고, 우리는 대표이사를 대리하는 입장에서 지분이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 투자 일정을 지켜내며, 회사의 현금 유출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소송을 전제로 한 검토라기보다, 실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결국 사람의 판단, 상대라면 우리의 협상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어떻게 조정해야 합의에 이를 것인지를 결단해야 했다.
결선 문제 역시 AI 도구를 활용해 꽤 만족스럽게 풀었다. 본선 때보다 손에 익은 부분도 있었다. 어떤 도구에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AI가 낸 답 중 어떤 부분을 의심해야 하는지, 최종 문서에서는 무엇을 과감히 덜어내야 하는지 조금은 감이 생긴 상태였다. 아쉽게도 결선 우수상까지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그 아쉬움보다 배움이 더 크게 남았다.
법률신문 기사 제목처럼, “로펌 변호사 1주 걸릴 답변, 로스쿨생 3시간 만에 제출”하는 장면은 이제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해지고 있다. 다만 그 말의 의미는 AI가 법률가를 대체한다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AI가 있기에 법률가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더 높아졌다는 뜻에 가까웠다.
그리고 시상식. 선배 법조인들의 AI 시대에 대한 고민이 가득 담긴 축사가 끝나고, 본선 우수상 발표가 이어졌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이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곧이어 우리 팀명이 불렸다. 태평양 문제를 받은 참가자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아 본선 우수상,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대표변호사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은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다. 결선 우수상까지 받지는 못했지만, 본선에서 우리가 작성한 답안이 태평양에서 출제한 문제를 받은 팀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큰 선물이었다. 갓 한 학기를 마친 로스쿨 1학년이 친구와 함께, AI 도구를 활용해, 중대한 기업 자문 사안에 관한 법률의견서를 3시간 만에 작성했고, 그것이 실제 로펌 변호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치며
AI는 빠르다. 그러나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할 만한 것은 아니다. AI는 많은 것을 제안하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역할은 결국 사람에게 맡겨져 있다.
법률가의 일은 이제 더 이상 자료를 ‘찾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자료가 중요한지 판단하고, AI가 놓친 쟁점을 찾아내며, 출처를 검증하고, 의뢰인의 상황에 맞는 실행 가능한 문장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법조인에게 더 중요해질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심사에서도 AI가 제시한 허위 판례나 잘못된 법령 인용을 찾아 수정하고, 여러 AI 도구를 교차 검증해 법률 논리를 완성한 답안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나는 AI 앞에서 법조인이 길러야 할 소양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답을 검증하는 집요함, 복잡한 사실관계를 구조화하는 힘, 기술이 만든 효율성을 사람을 위한 판단으로 바꾸는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의뢰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문장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이라는 사실.
우리는 팀명을 장난스럽게 “AI가 다 했어요”라고 지었지만, 대회를 마친 뒤에는 오히려 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AI가 다 한 것이 아니었다. AI는 많은 것을 도왔고, 우리는 그 도움을 받아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을 선택한 것도, 위험한 결론을 걸러낸 것도, 의뢰인을 위해 어떤 방향이 가장 책임 있는 대응인지 결정한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제1회 로스쿨 AI 챌린지는 나에게 상보다 더 큰 질문을 남겼다. AI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법조인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끝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직 그 답을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앞으로의 법률가는 AI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정확히 이해하고, 냉정하게 검증하며, 인간다운 판단으로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시작점에 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도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