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변호사에게 더 중요해질 의사소통 능력

지난 6월 로스쿨 AI 챌린지에 참가하며, 법률가가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그 결과를 얼마나 정확하게 검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방대한 자료를 읽고, 쟁점을 정리하고, 의견서의 초안을 만드는 속도는 놀라웠다. 그 도움을 받아 제한 시간 안에 답안을 완성하면서도, 어떤 사실을 믿고 어떤 결론을 선택할지는 계속 고민해야 했다.

대회를 마친 뒤에는 그보다 조금 앞선 단계가 궁금해졌다. 그때 우리가 받은 이메일과 계약서, 정리된 사실관계는 누군가 이미 준비해 둔 자료였다. 만약 그런 자료 없이, 자신의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의뢰인 한 사람이 앞에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의견서를 완성한 뒤 실제 상대방을 만나 합의를 이끌어내야 했다면, 나는 그것도 잘할 수 있었을까.

AI가 일을 더 잘하게 될수록

판례를 찾고 법리를 검토하며 서면을 작성하는 일에는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전문성이 필요했다.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AI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긴 기록에서 필요한 내용을 찾고, 비슷한 판례를 비교하고, 주장에 맞춰 초안을 쓰는 작업을 예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개인적인 체감만은 아니다. 미국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 업무 수행 실험에서도 AI를 사용한 경우 여러 과제에서 작업 시간이 크게 줄었다. 다만 결과물의 질이 향상되는 정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사실과 검토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AI의 성능과 정확도가 계속 좋아진다면, 사람이 직접 자료를 읽고 초안을 작성하고 수정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법리와 판례를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나 서면을 빠르게 작성하는 능력만으로 차이를 만들기는 지금보다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어야 할까.

나는 그 답 중 상당 부분이 사람과 대화하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의 이야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고, 흩어진 자료를 모아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 그렇게 검토한 내용을 의뢰인에게 설명하고, 협상 상대방과 접점을 찾으며, 수사기관이나 법원을 설득하는 일이다. 법률 업무의 시작과 끝에 놓인 이런 과정은 AI가 만들어 준 문서만으로 마무리하기 어렵다.

사실관계는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문제를 풀 때에는 보통 사실관계가 먼저 주어진다. 누가 언제 어떤 계약을 했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읽은 다음 법적 쟁점을 찾는다. 당사자 이름도 갑과 을로 정리되어 있고, 중요한 날짜와 행위는 대개 문제지 안에 들어 있다. 우리는 주어진 정보의 의미를 잘 읽어 내는 훈련을 한다.

그런데 실제 상담의 출발점은 훨씬 막연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돌려받지 못했다”고 찾아왔다고 해 보자. 이 한 문장만으로는 검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돈은 언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보냈는지, 돌려받기로 한 시점은 언제인지, 그동안 일부라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상대방도 빌린 돈이라고 생각하는지, 혹시 투자금이었다고 주장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송금 내역과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가 남아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의뢰인이 어떤 사실이 법적으로 중요한지 미리 알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본인에게 가장 억울한 일부터 길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정작 중요한 대화는 사소하게 여겨 생략할 수도 있다. 불리한 사실을 말하기 꺼리거나, 오래된 일을 기억과 추측을 섞어 설명할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 중요한 정보는 끝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질문 목록을 빠짐없이 읽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듣다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다시 물어야 한다. 불편한 사실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신뢰를 얻으면서, 모순되는 대목은 그냥 넘기지 않아야 한다. 의뢰인의 설명 중 어디까지가 직접 겪은 일이고 어디부터가 짐작인지 구분하고, 그 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모은 말과 자료를 시간 순서와 법률관계에 따라 정리하면 비로소 검토할 사실관계가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사실관계를 스스로 ‘조립’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정도 포함되어야 하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모르는 채로 남겨 두어야 한다. 처음부터 원하는 결론에 맞춰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후의 법률 검토가 아무리 정교해도 출발점부터 잘못될 수 있다.

AI는 확보한 자료를 정리하고 빠진 질문을 제안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의뢰인이 꺼내지 않은 이야기나 아직 제출하지 않은 자료까지 저절로 확보해 주지는 않는다. AI에게 무엇을 입력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보다 먼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좋은 서면을 쓴 다음에도 할 일이 남는다

검토를 마친 뒤에도 의뢰인과의 대화는 계속된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 결정하려면 가능한 결과와 위험, 비용과 시간을 의뢰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해야 한다. 법률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의뢰인이 실제로 원하는 일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돈을 돌려받는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의뢰인은 처음에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지만, 자세히 이야기해 보면 당장 생활에 필요한 돈을 빨리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금액 못지않게 상대의 사과를 원할 수도 있다. 그러한 우선순위를 알아야 어떤 합의안을 검토할지, 어떤 조건은 양보하기 어려운지 함께 판단할 수 있다. 승소 가능성을 적은 의견서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상대방과 협상할 때에는 상대의 사정도 파악해야 한다. 지금 지급할 돈이 없는 것인지, 책임을 인정하는 표현 때문에 제안을 거부하는 것인지, 앞으로의 거래 관계를 걱정하는 것인지에 따라 대화는 달라진다. 같은 금액을 두고 다투더라도 지급 시기나 방식, 사과의 표현, 향후 관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합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준비한 제안을 전달하고, 상대의 반응을 듣고, 의뢰인과 다시 의논하면서 조건을 조정해야 한다.

물론 수사기관이나 법원을 설득하는 일은 분쟁 상대방과 조건을 협상하는 것과 다르다. 재판부나 수사기관이 무엇을 의문스러워하는지 파악하고, 그 질문에 사실과 증거, 법리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한 문장을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대응하기 어렵다. 말하는 사람의 자신감보다,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한 근거를 제시하는 능력이 중요할 것이다.

자문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계약 조항의 위험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업부가 왜 그 조건을 원하는지, 상대 회사가 무엇 때문에 변경을 거부하는지 알아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계약을 만들 수 있다. 송무든 자문이든, 법률적인 분석이 현실의 결정으로 이어지려면 사람 사이의 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시험에서 연습하는 것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공부를 돌아보게 된다. 로스쿨에서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례형과 기록형 공부는 주어진 자료를 읽고 쟁점을 찾아 법리를 적용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논점을 빠짐없이 발견하고, 필요한 판례를 떠올리고, 논리적인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은 한 학기만 공부해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법률요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기 어렵고, 관련 판례를 모르면 의뢰인의 설명 중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하더라도 깊이 있는 법학 공부는 여전히 필요하다. 당연히 법을 깊이 알아야 질문도 구체적일 수 있다.

기록형 시험 역시 단순히 정답이 적힌 자료를 읽는 시험은 아니다. 서로 다른 진술과 증거를 비교하고, 신빙성과 법률적 의미를 판단해야 한다. 다만 자료가 복잡하고 모순되어 있더라도, 시험에서는 검토할 기록이 일단 손에 쥐어져 있다. 어떤 자료가 더 필요할지 의뢰인에게 물어보고, 추가 자료를 확보하면서 처음의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까지 경험하기는 어렵다. 답안을 제출한 뒤 상대의 반응을 보고 설득 방식을 바꾸는 과정도 시험 밖에 남는다.

모의재판이나 법률상담, 실무수습처럼 이를 경험할 기회는 있다. 다만 학생의 입장에서는 시험에서 평가받는 능력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AI가 법률 리서치와 서면 작성을 더 많이 도와주는 시대라면, 법학 교육에서도 사건을 처음 알아가는 과정과 검토 결과를 실제로 실행하는 과정을 더 자주 연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문제지 대신 의뢰인을 앞에 두는 수업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의 표준화환자가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다. 국시원의 설명에 따르면 표준화환자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맞춰 실제 환자처럼 연기하고, 수험생의 진료를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법학 교육에서도 일정한 사정을 가진 가상의 의뢰인을 두고 학생이 직접 상담하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사건의 전모를 적은 문제지를 주지 않고, 앞서 예로 든 “친구에게 보낸 돈을 돌려받고 싶다”는 정도의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이어 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관련 대화를 물으면 메시지를 보여 주고, 송금 경위를 확인하면 계좌 내역을 제시할 수 있다. 기억이 불분명한 부분이나 쉽게 말하지 못하는 불리한 사정도 시나리오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스무고개처럼 질문을 이어 간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숨겨 둔 사실을 몇 개 맞혔는지만 평가해서는 아쉬울 것 같다. 왜 그 질문이 필요한지 판단했는지, 답을 미리 정해 놓고 유도하지 않았는지, 의뢰인의 설명과 객관적인 자료가 다를 때 어떻게 확인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상담을 마친 뒤에는 확인된 사실, 아직 불분명한 부분, 추가로 확보할 자료를 나누어 정리하게 할 수 있다.

이후의 리서치와 의견서 작성에는 AI를 사용하도록 해도 좋겠다. 그러면 질문 하나를 놓친 일이 뒤의 검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직접 볼 수 있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상담에서 알아낸 사실과 확보한 자료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의견서와 상담 영상을 함께 보며 피드백한다면, 막연히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말보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훨씬 분명해질 것이다.

답안을 제출한 뒤에도 계속되는 과제

상담과 검토가 끝난 다음에는 상대방 역할을 맡은 학생과 조정이나 합의를 시도하게 할 수 있다. 양쪽에 공개된 공통 사실 외에 각 의뢰인의 사정과 요구를 따로 주면, 상대방의 생각을 모두 알고 시작하는 토론과는 다른 연습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쪽 의뢰인은 일부 금액을 줄이더라도 빨리 지급받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쪽은 총액보다 한 번에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을 부담스러워한다고 설정할 수 있다. 학생들은 처음의 요구만 반복해서는 이 차이를 알아내기 어렵다. 질문하고, 제안하고, 거절의 이유를 확인하면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도중에 새로운 자료가 나오거나 의뢰인이 뜻을 바꾸는 상황을 추가해도 좋겠다.

평가도 합의가 되었는지, 얼마를 더 받아냈는지에만 달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의뢰인의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합의하지 않을 때의 대안을 설명했는지, 권한을 넘어서 양보하지 않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합의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 판단을 의뢰인에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일도 연습에 포함되어야 한다.

상담부터 자료 확보, AI를 이용한 검토, 협상과 최종 설명까지 같은 사건으로 이어 가면 법률지식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는지 더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과목을 이런 방식으로 바꿀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배우고 있는 법리를 사람 사이의 문제에 적용해 보고, 그 과정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다시 공부할 기회가 조금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가

AI가 대화와 협상을 돕는 능력도 앞으로 계속 좋아질 것이다. 상담 내용을 정리하거나 다음 질문을 제안하고, 협상 상대방을 가정해 연습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AI가 영원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AI가 내놓은 분석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는,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자신의 판단을 정확히 설명하는 능력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개발자로 일하다 로스쿨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기술을 이해하는 법률가가 되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말에서 ‘기술을 이해한다’는 부분을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 AI를 사용해 볼수록, 어떤 법률가가 되어야 하는지도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당장은 공부할 법리와 판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것들을 제대로 익히는 일부터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서 사정을 충분히 듣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알아차리고, 어려운 결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연습을 함께하고 싶다. AI 덕분에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그 시간을 의뢰인의 이야기를 더 정확하게 듣고 다음 선택을 함께 고민하는 데 쓸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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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륜 소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블록체인 & AI 분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대구광역시, 대한민국 https://haryun.io